걷는 즐거움

이발소와 미용실: 사인볼, 회전 간판의 기원과 역사

안다™ 2022. 3. 15.

거의 수십 년 만에 미용실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이발을 했습니다. 코로나 핑계로 장발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회사 분들이 눈치를 주더군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회사를 마치자마자 집 가까운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동네에 이사온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그 미용실을 늘 이용했는데, 더 이상 인연의 끈을 이어가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콜로나라는 돌발 변수도 있었습니다.

 

옛날엔 사교의 장이었다고 할까요?

아주 어렸을 때에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아마 그 이발소도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 내내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아스라한 기억으로는 태어나 처음 갔던 이발소였던 것 같습니다. 

 

의자 위에 나무 판자를 올려놓고 머리를 깎아주시던 그 할아버지 이발사가 부산하게 움직이던 가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가끔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미용실을 이용하면서부터 사각사각거리는 면도의 갈끔함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아쉬웠지만 미용실 만이 가지는 편리함이 이발소를 역사 속으로 퇴장시켰던 같습니다.

 

이발소의 기원과 역사

이발소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면도는 물론 손톱과 발톱까지 다듬어주는 토탈 케어를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바버 Barber는 라틴어로 수염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고대에는 어쩌면 머리카락보다 수염을 더 소중하게 다루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면도하는 것으로 성인식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가위 종류를 보라!

18세기까지는 이발소에서 이발뿐만 아니라 골절치료 등 간단한 의료행위도 제공하였다고 합니다.

 

이발소의 회전 간판, 사인볼의 빨강, 파랑, 하얀색은 각각 동백과 정맥, 붕대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발사 = 의료기술자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쓰였겠지요.

 

세계 공통의 이발소의 회전간판을 처음으로 내건 사람은 1540년 프랑스의 메야나킬이라는 이발사라고 하는데요. 원형  막대기에 빨강, 파랑, 하얀색을 칠해 창문에 내걸었다고 하는데, 굉장히 창의적이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이발소의 퇴조와 미장원

사회가 전문화되면서 이발소에서의 의료행위가 금지되면서 영업 영역이 축소되었고, 개인 면도기가 보급되면서부터 이발소는 급속도로 퇴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남자=이발소, 여자=미용실이었는데 퇴폐이발소라든지, 남자도 미용을 추구하는 바람이 불면서 이발소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네일샵을 겸한 미용실

세월이 바뀌고,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전통적 의미의 이발소, 전문 바버샵이 유행한다고 하는데, 글쎄, 저는 아마 쭉 미용실을 계속 이용할 것 같습니다. 

 

한번 가면 좀처럼 바꾸지 못하는 성격인데다가, 면도를 못하는 아쉬움이 당연 남겠지만 미용실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이발'을 한다는 나름의 루틴에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삼푸를 할 때의 편안함도 미용실 선택의 한 기준이 된다.

새로운 미용실과 인연을 만들었으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마도 오랫동안 그 미용실을 이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새 미용실에 들어서던 순간, 내내 다녔던 미용실 원장님의 아릿따운 얼굴이 갑자기 그리워지더군요. 한 달에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인연이 쌓이다니, 사람의 인생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