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즐거움

조우리 장편소설 오 사랑, 한국에서 십 대의 사랑이 가능할까

안다™ 2021. 8. 2.

십대들의 사랑을 다룬 조우리의 <오, 사랑>(2020)은 제18회 사계절 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첫 장편 소설입니다. 오, 사랑은 십 대 소녀가 어떻게 첫 사랑에 빠져드는지를 생생하게 그린 장편소설입니다.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선이 세밀하게 드러나 있어서 이 소설을 읽어보시는 동안 첫사랑의 추억이 뭉게구름처럼 몽글몽글 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와 산이 많은 동네에 살고 있는 조우리 소설가는 전작 <어쨌거나 스무살은 되고 싶지 않아>(2019)로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얀 반려견과 십대의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 사랑 줄거리

주인공 오사랑은 막연하게 뷰티 유튜버가 꿈이라고 말해요. 사랑은 자기가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딱 보여주고 싶어 오프의 세계인 학교보다 온라인 만남을 더 좋아합니다.

 

어느날 '학교 밖에서 꿈꾸기'라는 오픈 채팅방의 오프라인 모임에 오사랑이 나가는데요. 거기서 이솔을 우연히 만납니다. 

 

주인공 캐릭터와 몇몇 만화 컷이 있는 소설입니다.

빛바랜 리넨 바지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호하게 외모에 신경을 하나도 안 쓴 것 같은 이솔.


거기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숏커트에 검은 테 안경을 쓰고 걸어들어오고 있는 이솔을 보자마자 오사랑은 묘한 끌림을 느끼게 됩니다.

 

조금 시크한 이미지?

사랑은 타투이스트가 꿈이라는 이솔과 대화를 나눌수록 그애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움직임은 심상한데 묘하게 가볍게 섬세한 이솔. 아주 긴 흰 팔과 긴 목, 비가 오면 고일 것같이 움푹패인 쇄골, 안경 너머의 쌍까풀이 없는 작지만 까맣고 크게 빛나는 눈동자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채팅방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활기찼던 이솔이 학교에서는 체육복 차림으로 종일 엎드려 자느라 점심까지 거르는 걸 본 사랑이는 그 날부터 매일 이솔과 점심을 함께 먹고 운동장 계단에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학교를 파한 후에도 매일 밤 만나 청춘의 시간을 같이 보냅니다.

 

"어디서건 솔이가 나타나면 모든 바람의 방향이 한꺼번에 바뀌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솔이의 주변에는 안개처럼, 느슨함과 무심함의 분위기가 어려 있었다.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설레게 했다. (···) 이 감정의 정체를 당장 정의 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 특별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른 어떤 친구에게도 가져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28쪽)

날뛰는 감정의 정체를 모르겠다. 기쁨과 부끄러움과 환희와 수치심과 서러움과 당황과 설렘의 대폭발이다. 이토록 강렬한 감정의 관통은 태어나 처음이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지나가길 기다렸다. 하지만 감정은 부메랑처럼 사라졌다 싶으면 다시 되돌아오고 가는 척하다 또 되돌아오곤 했다. (p.33쪽)


사랑은 이솔과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셀카를 찍어 페북에 올립니다. 학교 친구들은 이솔과 썸을 탄다고 놀립니다.

 

이솔이랑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애의 말로는 이솔은 체육창고에서 여자애랑 키스하다 걸려서 테니스부가 해체되고 전학가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것.

 

이솔은 왠만한 남자보다 여자를 더 잘 꼬셔라는 말에 사랑은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솔이와 찍은 사진을 페북에 잔뜩 올립니다.

 

뷰티 유튜버가 꿈인 사랑이에게 이솔은 유명 타투이스트 유튜버 아나키고고를 소개시켜줍니다. 아나키고고는 타투하는 방법을 라이브 방송하면서 이솔과 오사랑을 시청자들에게 갑자기 소개합니다. 아나키고고는 솔과 사랑의 페북도 동영상에 태그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페북지기가 타투하는 동영상에 걸린 사랑이와 솔이의 페이브스북 링크를 '십 대의 커밍아웃, 십 대의 사랑'이란 주제로 그날의 페북 초이스에 올리는 바람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졸지에 유명 레즈커플이 됩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이솔과 사랑은 악플 폭탄에 경악하고 학교는 발칵 뒤집힙니다.

자기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눈총이 따까워지고 왕따와 은따가 갈수록 심해질수록 오사랑은 솔이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게 됩니다. 솔이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 태국으로 이민갈 생각으로 사랑이는 전단지 알바를 시작합니다.

사랑이는 유투버 같은 거 말고, 솔이와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진짜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이를 만나고 꿈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이에게 솔이는 꿈 자체가 되었습니다. 마음이라는 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요.

솔이의 곁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 삶을 꿈꾸는 사랑이에게는 솔이와의 이민 계획만이 멀리서 빛나는 등대였고 희망이 됩니다. 그때부터 오사랑은 그 날을 기다리며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견뎌 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이가 더 이상 학교에 다닐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의 폭력적인 행동의 수위가 점점 올라갑니다. 사랑이는 할 수 없이, 충동적으로 지금 당장 태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집에 있는 물건 중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던 와중에 세탁실 안쪽에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작은 상자를 발견합니다. 그 상자 안에는 누군가가 매년 보내온 사랑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보낸 카드가 차곡차곡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이는 그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빠'임을 직감합니다.

 

솔이와 무작정 영국으로 떠나는 사랑이

친아빠가 영국에 살고 있다는 걸 안 사랑이는 태국이 아닌 영국으로 계획을 급 변경합니다. 그날 당장 솔이와 함께 영국행 비행기 표를 끊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사랑이와 솔이는 우여곡절 끝에 아빠의 전 밴드 친구 로이스턴을 만나게 되는데요. <뱅드림> 캐릭터 츄츄가 그려진 옷을 입고, 손에는 매니큐어를 칠하고, 목에는 고양이 귀 모양인 헤드폰을 걸고 있는 로이. 마음 속에 자신의 정원을 갖고 살아가는 로이를 보며 사랑이는 부러워합니다.

 

나는 나를 텅 비우며 지켰는데 이 사람은 다 가진 채로 지켰구나. 어른이라 그런 걸까. 아니다, 모든 어른이 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자기의 정원이 있는 어른이 되는 거지?(152쪽)

 

로이를 연결고리를 해서 사랑이는 친아빠의 엄마, 할머니를 찾는데 성공합니다. 비틀즈가 좋아 독일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할머니의 집에서 보드카를 좋아하는 고모와 애칭인 킨과 펩시로 불리는 사촌들과 할머니의 남친 왓슨 할아버지, 왓슨의 손녀인 레나와 그의 연인 루이스까지. 무엇보다 일본에서 급히 돌아온 친아빠와 그의 아내까지도.

이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즐기며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도 편견없이 받아들이며 애정으로 지지해주는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에 저런 가족이 있을까 정도로요.

 

오, 사랑 책표지

 

오, 사랑 독후 감상

<오, 사랑>은 사랑이와 이솔을 통해 한국에서 십 대의 사랑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사랑과 이솔은 폐쇄적이고 편협한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는 질식할 듯한 한국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무너지지도 않고 용케 더 단단하게 성장해갑니다.

이솔이의 아빠는 딸의 성적 지향성을 알고 딸과 대화조차 나눠지 않았습니다. 오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즈 커플로 알려진 이후 사랑이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닐수도,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성조차 털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소설은 다행스럽게도 해핑엔딩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사랑이는 할머니 가족을 만나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이솔이는 영국에서 타투를 배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현실이라면 사랑이와 이솔은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십대가 한국을 떠나 무작정 영국을 여행하고 거기다 친아빠가 영국에 있었다는 설정은 확실히 과한 데가 있습니다. 더구나 할머니의 가족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청소년 소설의 한계이겠지만, 그럼에도 결말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오, 사랑>이었습니다.

 

꼭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설령 사랑이와 이솔이 영국의 거리에서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더라도,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강렬한 감정의 관통은 그것만큼의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참고로 목차를 실어둡니다.

 

목차

1부 #오픈 채팅 #이솔 #엄마 #소문 #페북과 싸이월드 #아나키고고 #확산 #개근의 의무 #거제도든 태국이든 #아르바이트 #왕따와 은따의 차이 #계획 변경 #가출, 예상 밖의 스케일 #영국으로

2부 #신고식 #아빠의 집 #100w/m으로 말하는 로이스턴 #리틀 헤이븐 #가족? #아빠의 방 #솔이의 장소 #구름은 흘러가고 #헬로, 굿바이 #아빠, 그리고 아빠 #공항으로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작가의 말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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