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즐거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상문학상 수상거부 작가 이기호 초단편 소설

안다™ 2020. 2. 2.

요즘 문학계에서는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가 이슈다. 올해 이상 문학상 우수상 수상자로 결정된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를 했다.

그리고 지난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던 소설가 윤이형은 최근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운동과 관련, 자신도 작가로서 영원히 작품 활동을 하지 않겠다며 절필 선언을 했다.

문학계에서 이 무슨 끔직한 일인가? 작가의 절필 선언은 작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과 다름없는 심각한 문제인데 말이다.

이상문학상을 주체하는 문학사상사는 그간 이상문학상 '수상작에 대하여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조건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여해 온 모양이다.

이 무슨 갑질이란 말인가? 그것도 예술하는 양반들이 말이다. 대기업들의 행패는 그래도 돈을 버는 족속들이니 돈에 눈이 어두워 그럴수도 있겠거니 이해할 수도 있지만 출판사, 이들은 또 도대체 뭔 족속들인지 심히 유감스럽다.

그래서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작가 이기호의 소설을 찾아 읽어 보았다. 요즘 초단편 소설에 꽂혀 있었기에 우선 그의 초단편 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를 찾아 읽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작가의 초단편 소설들은 그야말로 계몽 소설류의 그것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이웃과 잘 지내라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작가는 아직 1972년생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나이 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제발 좀 효도하라고 은근히 권할 만한 소설인 것 같다. 또 자녀 양육에 대한 어려움을 넌지시 토로하는 단편들도 많다.

그래도 이상문학상 수상거부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자 리뷰는 쓰야 되겠고 그의 초단편 소설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한 편은 골라야 했는데, 그것이 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이중 생활'이 그래도 그나마 요즘 사람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 같아 여기 소개한다. 남편의 이중 생활은 SNS에 푹 빠진 남편의 행각을 추적한 아내의 글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들과 사진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는데... 참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더라구요. 거기엔 내가 그때까지, 그러니까 연애 기간까지 포함해 십 년 넘게 보아온 남편은 온데간데 없고, 감상적이고 섬세하고 따뜻한, 심지어 지적이기까지 한 남자가 있는 거예요. 일테면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만 싶다. 인도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잊고 산 내 꿈들이 방울방울 튀어 오르고 있다.'

참 나, 이런 걸 그 흔한 말로 지랄도 풍년이라고 하나요. 우리 남편은요, 머리가 가늘어서 비가 오는 날을 유독 싫어하거든요. 휴일에 비 오면 칼국수나 파전 같은 것을 먹고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구는 위인이죠. 그런 인간이 잊고 산 꿈 운운하니 이게 무슨 산성비를 소방 호스로 잘못 맞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초단편은 아마 요즘 남편들에게 혹은 요즘 아내들에게 헉, 또는 헐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할 소재일 것이다. SNS는 유저들에게 끊임없이 가면을 씌우고 마치 연예인인마냥 한껏 뽐내도록 한다. 어디 SNS 뿐이랴. 블로거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적인 것처럼, 감성적인 것처럼 행세하지는 않았던가 돌아본다. 지랄도 풍년이 되면 곤란하겠기에. 

아무튼, 문학사상사는 꼰대질을 관두고 지금이라도 각성하여 순진문구한 작가들을 팔아 돈장사할 생각을 그만 접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SNS나 유튜버나 모든 유저들도 그만 이중 행각은 그만두고 자신에게 조금은 솔직해 졌으면 하는 바램이다.